'도깨비를 빨아버린...’ 2018.06.13

고랑이랑 들녘에서 도깨비를 빨아버린...’

  두 여인을 만나고 삽니다. 관계를 맺은 시기도 다르고 풀어가는 방식은 반대이지요. 한 여인에겐 주로 잔소리를 듣고 다른 여인에겐 주로 합니다. 한 여인에겐 배우고, 다른 여인에겐 가르칩니다. 한 여인은 농사꾼의 삶이 얼마나 고된 일인 지 몸으로 보여주지만 다른 여인은 농사짓는 의미를 되새김질 하도록 해줍니다. 인연의 끈은 모두 아내가 연결해 줬습니다. 공통점을 굳이 찾자면 둘다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어느 날 처음으로 만났다는 것이지요.

그 중 한 여인을 만나고 다투고 정이 쌓여왔던 소회를 소개하고 다른 여인에 대해선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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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잔소리 만큼 정은 쌓이고

찐한 만남은 귀농 3년째부터 시작됐습니다. 풀이 대파보다 커질 즈음이었지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목포에 계신 장모 님이 집을 찾았습니다. 오시자마자 향한 곳이 대파 밭이지요. 밭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나 볼 수 있는 굽이굽이 산길을 돌고 돌아야 찾을 수 있는 곳었지요. 송악 저수지 인근 동화리 배골에 자리하고 있었으니까요.

 

장모 님은 이날 점심도 거르고 풀을 메기 시작했습니다. 어리버리 한 사위 또한 장모님 옆에서 하루종일 개 끌려가 듯 끌려다니며 풀을 뽑아야 했습니다.

장모 님 비가 많이 오는데 그만 하시죠.” “장모 님 점심은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장모 님 조금 쉬었다 하셔요저는 기회만 있으면 항변하듯이 이야기 했고 그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자네는 밥이 넘어가는가?” 였습니다. 그날 저는 담배를 숨어서 피면서 ! 오늘 완전 개고생 하네...”라는 말을 되풀이 한 기억이 납니다.

 

장모 님은 그 이후로 일 년에 두 세번 농사 일을 도우러 왔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일하고 들어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 청소까지 끝낸 뒤에야 잠을 청하셨습니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농부답게 거침이 없었고 안되는 일또한 없었습니다. 장모 님을 볼때마다 동화에 나오는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엄마를 연상하곤 했습니다. 허나 만나는 횟수가 늘고 오래될수록 장모 님 잔소리도 많아지고 그 강도 또한 세졌습니다. 귀농 초보생이 농사에 익숙질수록 잔소리는 지겨웠고 짜증과 스트레스의 원인이었지요. 때론 무시해버리기도 하고 때론 장모 님! 제 농사여요 자꾸 관여하시면 힘들어요라고 똑 잘라 말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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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장모 님은 일을 멈추지 않았고 깊어지는 갈등만큼 정도 쌓여 갔습니다. 작년과 올해엔 낡고 허름한 집에서 사는 우리가족이 안타까웠던 지 집수리를 거들어 주셨습니다. 일년 가까이 함께 먹고 자고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면서도 짬짬이 양파 마늘 심고 올라온 풀을 세번 네번씩 매었지요. 올봄엔 감자심고 생강 심고 옥수수, 수수를 보살펴 주시곤 훌쩍 목포로 떠났습니다.

요즘 양파와 마늘을 캐고 있습니다. 장모 님이 들인 땀과 정성이 무색할 정도로 양파는 탁구공 만하고 마늘은 기대만큼 크질 않습니다.

 

풀밭에서 양파 캐고 마늘 뽑고 있는데 불현듯 장모님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농사가 어디 사람 힘으로만 되던가? 잘못될 때도 있고 하는거지...” ‘도깨비를 빨아버린 장모님’의 내공있는 잔소리가 가끔 그리워 지기도 합니다.  건강하고 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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