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처럼... 2018.07.03

◆고랑이랑 들녘에서 – ‘오래 사귄 친구처럼...’

 

금요일만 되면 하루를 설레는 감정으로 보냅니다. 금요간식이 있어서 일까요? 이 날만 되면 한 여인이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함께하고 맥주잔을 기울이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지요.
97년 7월22일 오전 10시30분. 이 여인을 처음 본 건 영등포의 한 종합병원에서 였습니다.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지요. 큰 딸 동하는 아빠와 이렇게 만났습니다. 초등학교를 귀농에 맞춰 시골학교로 입학 한 뒤 동하는 줄곧 농촌에서 자랐지요.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대신 바로 취업을 선택했습니다. 지금은 천안의 한 원룸에서 지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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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딩 땐 부모 속을 부단히 썩였습니다. 싼티나는 진한 화장과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짧은 치마. 주변은 아랑곳 하지않고 남자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민망한 모습, 그리고 술과 거친 말투... 부모의 늘어나는 잔소리만큼 사춘기 소녀의 반항심은 더 쌔졌지요. 고딩 2년이 지나서야 큰 딸은 방황을 접고 숙녀의 티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철들기 시작한 셈이지요. 부모 농사일을 돕기도 하고 친구와 촛불집회에 나가며 사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직장생활에서 드러나는 부조리를 온몸으로 만나며 살지요. 컴퓨터 작업을 너무 오래해 손목에 염증이 생겨도, 친구가 직장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해도, 회사가 1년 가까이 근로계약서 없이 부려 먹어도... 한마디 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 고졸 계약직 여성노동자의 비애를 한껏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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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큰딸이 금요일이면 옵니다. 그리고 술잔을 함께 기울입니다. 친구처럼. 세상의 불평등한 모습에 대해 거침없이 토로 합니다. 다음 날이 되면 함께 밭으로 향합니다. 양파를 줍고, 고구마를 심고, 수수와 참깨를 심고 풀을 맵니다. 전날 못다 한 이야길 또 나눕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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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은 이제 한두달 있으면 다녔던 회사를 그만 둡니다. 더러운 세상, 더 이상 억울하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부모 품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려는 큰 딸을 무조건 응원만 하렵니다. 그것이 부모의 모습이고 작물을 올곧게 키우는 농부의 본분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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