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과 먹어주는 것’의 차이 2018.10.02
◆고랑이랑 들녘에서 – ‘먹는 것과 먹어주는 것’의 차이

300여평 밭에 심었던 토란이 어느새 어른 키를 훌쩍 넘겼습니다. 요즘 생토란줄기를 잘라 한살림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고랑 사이에서 쪼그려 앉아 일하다 보면 토란 밭이 어두운 터널처럼 느껴집니다. 이국적인 토란 잎을 보고 있노라면 정글 속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거진 밭 한가운데 이르면 나도 모르게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섭기도 합니다. 저 멀리 환한 햇볕이 내리쬐는 터널 밖으로 빨리 나가고 싶어집니다.

귀농한 첫날도 그랬습니다. 밤늦게 도착한 마을. 살 집이 준비되지 않아 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습니다. 애들 재우고 나온 밖은 그야말로 ‘칠흑같은 밤’ 이었습니다. 사방이 막힌 밀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무서웠습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나약하게 만드는 지를 경험한 밤이였지요.

고랑이랑이 토란 밭 한 가운데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생산과 소비의 행복한 동행을 꿈꿔 왔습니다. 소비자는 농부의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주고 농부는 소비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신뢰 관계만 만들어지면 행복하게 농사지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큰 의미는 아니지만 작은 본보기라 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협동조합 이름도 ‘고랑이랑’으로 정했습니다. 서로 기대야 온전히 설 수 있는 ‘지게’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지요. 비록 서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꿈은 그냥 꿈일 뿐인가 봅니다. 서로 어깨를 빌려주기 보단 보이는 것에만 매달려 실타래처럼 꼬일 때가 많습니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꿈들이 콕콕 찌르는 바늘로 인해 순간 날아 가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고랑이랑에서 공급받은 물품을 반품하는 사례도 최근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이유도 다양합니다. “맛이 없어서...”, “모양이 좋지 않아서...” “상한 물품이 많아서...”
타당할 때도 있었지만 쉽게 가는 길을 포기하고 힘든 길을 선택한 농부의 노고가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

농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줄기차게 ‘제 값’을 요구하며 양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경쟁력 없는 농산물을 처분하는 곳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하는 농부도 만납니다.

벌써 5년이 다되어 갑니다. 로컬푸드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지역 농산물은 저렴할 수 없고 싱싱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걸 왜 할까? 수천번 곱씹어 봤습니다. 내린 결론은 결국 고마움이었습니다. 맛있게 먹어주는 소비자가 고마워서... 예쁘게 꽃단장해야 팔려나가는 상품이 아니라 그냥 먹어주는 소비자가 있다는 것이 감사해서.. 감사함은 꽉찬 행복이 되어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농사는 심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먹거리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소비자 또한 그냥 먹어주길 바랍니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농부가 흘린 땀이 너무 고마워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주길 원합니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그런 고랑이랑을 응원하신다고요? 그럼 믿고 소비 하세요. 최고의 응원은 바로 최대의 ‘소비’입니다. 열정적인 생산과 소비로 칠흑같은 밤을 서로 손잡고 헤처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농부의 얼굴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믿고 먹어주세요. 가을입니다. 고랑이랑의 건강한 농산물로 풍성해 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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