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랑이랑 들녘에서 – 백조와 고딩의 양파밭 ‘이불덮기’ 2019.01.21
◆고랑이랑 들녘에서 – 백조와 고딩의 양파밭 ‘이불덮기’

멈춰있는 계절입니다. 이 맘때 작물은 생장을 그만두고 겨울을 맞이합니다. 작물의 입장에서 겨울은 살아서 봄을 맞이하느냐 아니면 죽어 땅에 묻히느냐를 결정짖는 운명의 시기이지요.

며칠전 양파와 마늘을 심은 밭을 둘러봤습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양파와 마늘도 추위에 견뎌내기 위해 자기 것을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새파랗던 줄기는 어느새 하얗게 변하고 따뜻한 흙속에 있어야 할 마늘은 이곳 저곳 패잔병처럼 널 부러져 있었습니다.

마늘을 다시 묻어주고 줄기만 앙상한 양파를 위해 이불을 덮어주기로 했습니다. 10일 늦게 모종을 옮긴데다가 비닐없이 맨땅에 심은 양파가 겨울 맹추위를 이겨내기에는 버거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어여쁜 백조 ‘동하’와 ‘기말고사’라는 전쟁을 치루고 막 돌아온 고2 ‘찬하’가 함께 했지요. 유기농 왕겨(벼 껍데기)를 실어오면 백조와 고딩은 우아한 날개짓과 화이팅 넘치는 삽질로 한땀 한땀 펼쳐 나갔습니다.

이틀 동안 100포대가 넘는 왕겨를 실어 날랐지요. 땅이 녹을 무렵 시작한 일은 해와 달이 바뀌는 어둑어둑 한 초저녁이 돼서야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동하는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며 잠을 설쳤고 다음 날 찬하는 허벅지가 당겨 걸을 때마다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올 농사는 자식들의 “아이쿠” “끙끙” 대는 소리와 함께 끝맺음 하게 됐습니다.

솔직히 이틀간 농사 일로 힘들어하는 자식들이 걱정스러웠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먹거리와 농사에 관심이 많아 진 동하, 뒤늦게 공부하는 재미를 느껴 열을 올리고 있는 찬하. 무엇보다 “우리 애들이 농사 일은 힘든 일"로 여기고 두려워하며 겁내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허나 기우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일 끝나고 함께 삼겹살을 굽고 소주 한잔 걸치며 나눴던 이야기 속에 해답은 있었지요. 농사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우리 집의 힘들고 버거운 상황에 대해 동하와 찬하는 가족 구성원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양파를 보니 ‘백조’가 생각납니다. 정지되고 고요해 보이는 땅위에서 줄기와 잎을 다 내주고 평온하게 추위를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땅속에서는 뿌리의 눈물겨운 투쟁이 그려지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인가요? 백조로 살고있는 ‘동하’에게 마음이 더 갑니다. 겉은 고요하지만 속은 풍랑의 바다를 넘고 있겠지요. 세상을 어떻게, 무얼 하면서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해 두려움이 큰 가 봅니다. 어찌 동하만 그렇겠습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청춘들이 같은 처지이지요. 요맘 때 양파는 바로 옆에 사는 청년을 닮았습니다.

내년에는 자식들과 함께 땀흘리는 시간이 더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철들고 성장했으면 하는 것이 농부아빠의 올해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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